14살, 나는 장애인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겨우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아직은 모든 게 낯선 교실, 친구라고 부르기엔 함께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서로를 잘 모르던 또래들과 부대끼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교과서 위에 동전을 놓고 판치기를 하거나 전날 했던 게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치 서로 다른 크기의 태엽이 어거지로 맞물려 돌아가듯, 교실은 늘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찼다.

일주일의 마지막이었던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오늘 PC방 갈래?”
조금 친해진 녀석이 한마디 던지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에게 다가온 그 팔, 친근하게 내 목을 감싸 쥔 그 부드러운 마음이 나에게 가져온 것은 뜻밖에도 ‘전신마비’였다.

녹화하던 카메라를 떨어뜨리면 화면이 이렇게 담길까. 친구를 바라보던 시야가 순식간에 어지러이 돌더니 천장에 고정되었다. 내 몸은 힘없이 쓰러졌다. “야, 괜찮아?” 당황한 친구들의 목소리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친구들의 부축을 받고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내 자리에 다시 앉았을 때, 내 몸은 이미 내가 알던 것이 아니었다. 감각이 아예 끊긴 것은 아니었으나 모든 것이 뒤틀려 있었다. 조율되지 않은 공구를 조작하듯,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려 하면 이미 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고, 왼쪽 어깨를 잡으려 하면 팔은 이미 등 뒤로 넘어가 버렸다.
종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행히 감각이 조금씩 돌아왔고,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고마운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친할머니의 제사였다. 사실 마비 증상은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간간이 있어왔다. 하지만 그날 겪은 증상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생소하지만 결코 처음은 아닌 경험, 자라나고 성장하기만 해야 할 시기에, 그대로 두면 나빠지기만 하는 병이 내 몸에 깃든 줄도 몰랐다.

늘 병원에 동행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다음날 처음으로 나와 함께 병원을 찾으셨다. 동네 의원이 아닌 정형외과였다. 엑스레이를 보던 원장님은 이상이 보이지 않으니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서를 써주셨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검도를 너무 열심히 해서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건강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에 대학병원에 가도 별일 없을 거라 믿었다.

차가 없던 아버지는 직장 동료분께 부탁해 그분의 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의료용 망치로 내 무릎을 치며 반응을 살피더니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 말끝에 ‘선불’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치장하는 것을 싫어하시던 아버지의 겉모습 때문이었을까. 당시 50만 원이라는 거금의 촬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 짐작한 의사의 배려 혹은 경계였을 것이다. 돈을 확인하고 찍겠다는 것인지, 도망칠까 봐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은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지갑에서 현금 50만 원을 꺼내 책상 위에 내리치시며 말씀하셨다. “당장 찍어주쇼.”

비싼 값을 치르고 찍은 MRI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환자는 집에 보낼 수 없습니다. 가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내 신경은 이미 손상되어 있었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당장 입원해야 했다. 2~3개월의 입원과 각종 검사 끝에 밝혀진 원인은 목뼈 3번의 골절이었다.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골절된 뼈가 신경을 눌러왔던 것이다.

수술과 회복을 위해 ‘할로베스트’를 착용해야 했다. 이마 두 곳과 뒤통수 두 곳에 못을 박아 가슴 조끼와 연결하는 장치다. 그 장치를 끼던 날, 열네 살 소년의 두개골과 피부 사이를 파고들던 연필심만 한 주사바늘의 감촉이 생생하다. “아프냐? 더 조여야 돼”라며 낑낑대던 젊은 의사의 모습과 내 눈가와 목덜미로 연신 흘러내리던 핏줄기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얼마 뒤, 골반 뼈를 잘라 목에 붙이는 수술이 진행되었다. 오전 9시에 들어간 수술실에서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나왔다. 의식을 회복한 뒤 중환자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을 만났다. 극심한 어지러움과 갈증 속에 어머니는 젖은 헝겊을 입에 물려주셨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한아, 괜찮니? 그려… 지금 밤 9시인데, 12시가 넘으면 여기 중환자실이 하루에 30만 원이래. 일반 병실로 갈 수 있겠니?”

나는 괜찮다고 답하고는 일반 병실로 향했다. 수술 다음 날 아침,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려 화장실까지 걸어갔다가 “그 심각한 수술을 받고 어떻게 걸어가느냐, 미쳤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3일간 강제 요양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회복했다. 하지만 비뚤게 붙은 목뼈 때문인지 심한 측만증이 생겼고,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는 ‘지체 장애인’이 되었다. 나의 14살은 그렇게 남들과 조금 다른 궤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